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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원의 디지털 경영] 쾌도참마(快刀斬麻): 디지털 혁신은 ‘CEO 어젠다’

2024.09.02

‘쾌도참마(快刀斬麻)’는 《북제서(北齊書)》에 나오는 말이다. 직역하면, ‘잘 드는 칼로 삼실을 단번에 벤다’는 뜻이다. ‘어지럽게 얽힌 일이나 혼란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남북조시대 동위의 실력자 고환은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하루는 아들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주고 추려내도록 했다. 모두가 엉클어진 삼실을 한 올씩 뽑느라 힘들어하고 있을 때, 둘째 아들인 고양이 칼로 단번에 삼실을 잘라버리면서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한다(난자수참·亂者須斬))”라고 말한 것이 그 유래다. 고양은 훗날 이런 통찰력과 대담성으로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제나라(북제)를 건국하게 된다. 


벌써 9월이다. 이맘때쯤이면 기업들은 원대한 목표와 부푼 기대를 품고 다음해 사업계획 수립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전년 대비’, ‘손실 회피’, ‘경쟁자’, ‘부문간 알력’ 등 광범위한 편견과 내부 정치의 결과로 결국 ‘전년 수준’의 투자와 자원배분을 계획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다음해에는 성과와 성장 곡선이 드라마틱하게 ‘하키 스틱’ 모양으로 변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CEO는 거의 매해 반복되는 ‘목표 미달’이라는 성적표를 앞에 두고 ‘혁신적인 성장’과 ‘장기적인 성과’ 그리고 ‘단기 손익 개선’이라는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쾌도참마의 해법’을 고민하게 된다. 지독하게 얽힌 삼실을 한 뭉치씩 받아 든 고환의 아들들처럼 말이다. 


성공적인 혁신 기업의 특징 

사실은 혁신적인 성장과 지속적인 혁신 역량을 갖추고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달성한 기업의 사례를 참조하면 쾌도참마의 해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

2018년 맥킨지 컨설턴트 3명이 함께 펴낸 책 《Strategy beyond the Hockey Stick》에 소개된 사례를 보자. 맥킨지가 전 세계 약 2400개 대기업의 2010~2014년 수익을 분석한 결과, 하위 1분위와 상위 5분위 기업은 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모양을 나타내었다. 상위 5분위(20%) 기업의 연평균 수익은 중간 3개 분위 기업 평균 수익의 무려 30배에 달했다. 특히 상위 20%의 기업이 전체 경제적 이익의 90%를 차지했으며 이처럼 수익을 독식하는 모양을 ‘파워 커브’로 명칭했다. (파워 커브 그래프는 하키 경기에 사용되는 ‘하키 스틱’과 비슷한 모양)

또한 맥킨지의 2023년 보고서 <Innovative growth: view from the top>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21년 사이 탁월한 성과를 보인 65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상위 5분위 기업은 업계 평균보다 높은 총주주수익률을 달성했으며, 특히 상위 50개 기업은 글로벌 2000대 기업의 평균보다 무려 11%p나 높은 총주주수익률을 달성했다. 

맥킨지에 의하면, 이들 상위 그룹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높은 디지털 비전과 혁신을 바탕으로 핵심사업의 성장과 함께 숨겨진 성장기회를 포착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운영모델과 역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디지털 혁신에 동종 업계 대비 30% 더 많은 인력과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기업이 디지털 혁신을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고 올바른 투자를 통한 역량을 구축함으로써 초우량기업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실패하는 디지털 혁신과 성공하는 디지털 혁신 

변화, 혁신, 성장을 강조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특히 ‘디지털 혁신’은 수년 동안 대다수 기업의 핵심 성장 키워드였다. 디지털 혁신의 핵심은 ‘디지털화 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만드는 것’, 즉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에 있다. 진정한 디지털 혁신은 디지털 기술 도입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러한 디지털 혁신을 이해하는 CEO는 드물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많은 CEO가 디지털 혁신 전략을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혁신 전문가 브라이언 솔리스가 2017년 발표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황> 보고서에서는 디지털 혁신을 시장 변화와 혁신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로 생각하는 기업은 37%에 불과했다. 2023년 <KPMG 기술설문조사>에서는 미국 경영자의 대부분이 현재까지 디지털 혁신 투자로 인한 성과나 수익성 증가는 ‘기대 이하’라고 응답했다. CEO는 디지털 혁신을 단순한 기술 도입으로 생각하여 CIO의 책임으로 방임하고, CIO는 정확한 목적과 기대 가치에 대한 협의 없이 신기술 도입에 급급한 결과다. 

하지만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혁신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디지털화의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신을 추진한 기업 중 70%가 여전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 더 나은 고객경험에 투자한 디지털 리더, 즉 진정한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디지털 선도기업은 동종 업계 대비 수익성장률이 1.8배 더 높고 총기업가치성장률은 두 배 이상에 달했다. 

디지털 혁신은 단기적으로는 디지털 기술과 업무방식이 생산성 개선과 고객경험 향상으로 이어지며,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기회와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장을 열어줌으로써 기업이 지속적인 성공을 구가할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기업은 디지털 역량과 기술에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BCG의 조언이다. 


디지털 혁신이 성과를 거두려면 

디지털 혁신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의 전체 전략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비즈니스 전략과 디지털기술에 투자하여 비즈니스 운영, 프로세스, 고객과 직원에게 가치를 창출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핵심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디지털 혁신 전략을 CEO의 어젠다(Agenda)로 정의하고 CEO와 CFO, CIO가 합심해 추진한 기업들은 디지털 혁신에 성공했다. 

디지털 혁신은 경쟁자와 빠르기를 겨루는 경주(競走)가 아니다. 조직이 계속해서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근력을 만드는 일이다. 조직의 역량이 향상되고 있는지, 전체 조직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지, 혁신 지향적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는지, 조직의 의사결정이 정확하고 빨라지고 있는지를 지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과 고객에 대한 가치, 변경되어야 할 프로세스와 달성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통합된 추진 로드맵을 가진 기업은 성공한다. 이들 지표를 단기 성과 목표 달성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이니셔티브로 채택하고 관리해야 한다.

디지털 혁신은 비즈니스와 기술이 함께 혁신해야 한다.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사업부문에 무작정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과 디지털 혁신은 통합되어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하고, 따라서 CEO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혁신은 기업의 가치 상승을 가속화하는 전략 

《In search of Excellence(1982)》, 《Build to Last(1994)》, 《Good to Great(2001)》 같은 베스트셀러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초우량 기업의 성공은 위대한 CEO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CEO 효과’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CEO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배(倍)로 커졌다고 한다. CEO의 역할과 탁월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CEO는 기업의 가치 상승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연구개발, 고객관계 관리, 공급망 관리, 운영·관리 최적화 등 기업의 모든 가치사슬을 관통하는 핵심은 디지털 혁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일류 기업들의 성공 사례는 디지털 혁신이야말로 기업이 당면한 얽히고설킨 난제를 해결하는 쾌도참마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담대한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디지털 혁신이야 말로 21세기 경영자의 필수불가결한 어젠다임을 다시 명심하자. 


차동원 에이치엔아이엑스 HNIX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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